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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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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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지혜윰길의 고요한 숨결을 따라, 전동성당의 안내를 시작합니다.  전동성당은 1791년 12월 8일(신해박해)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참수되어 순교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터입니다.  1801년 10월 24일(신유박해) 호남의 사도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동생 유관검, 윤지충의 동생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능지처참형으로 순교했고, 이어 김유산 토마스와 이우집은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윤지충과 권상연, 유항검과 윤지헌은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230년만에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유해가, 220년만에 윤지헌의 유해가 초남이 성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보두네 신부(François Xavier Baudounet 1859-1915)는 1889년에 전주본당(현 전동성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으나, 당시 전주는 개항지가 아니었고, 전라감영이 위치하고 있어 전주에 곧바로 들어올 수 없었기에, 전주 근교인 대성리에 머물면서 전교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첫 순교 100주년인 1891년 현 성당 건물 옆에 위치한 한옥을 사서 본당을 전주 읍내로 이전하였습니다.   보두네 신부는 교우들의 성당 신축기금과 자신이 절약해 모은 돈으로, 첫 순교자들이 순교했던 곳을 매입하여 본당의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1908년 명동성당 건축 경험이 있었던 푸와넬(Poisnel) 신부의 설계로 성당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성전의 주춧돌로는 전주성의 성벽 돌이 사용되었는데, 일부 돌은 참수된 순교자들의 머리가 성벽에 매달렸을 때 피가 스며든 돌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전 건축에 사용된 목재는 주로 치명자산(승암산)의 나무들이고, 벽돌은 공사를 담당한 중국인 기술자 100여 명이 직접 구워 만든 것입니다.  공사기간 동안 전주 시내 교우들은 물론 진안, 장성 등지의 교우들까지 밥을 지어 먹을 솥과 양식을 짊어지고 와 헌신적으로 자원 부역을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 끝에 공사를 시작한 지 7년만인 1914년 외부공사를 마쳤는데, 이듬해 보두네 신부는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56세의 나이로 선종하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제2대 주임신부인 라크루 신부(Marcel Lacrouts 1871-1929)의 주도로,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성당 내부공사를 진행하여 착공한 지 23년만에 공사가 완성되었고, 1931년 6월 18일 성당과 사제관이 축성되었습니다.  라크루 신부는 1926년 사제관을 신축하였는데, 1937년에 전주교구가 설정되어 전동성당이 주교좌 성당이 되면서 현 사제관은 주교관과 교구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57년 주교좌 성당이 중앙성당으로 이전되었고, 1960년 교구청이 이전된 뒤에는 사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동성당의 성전은 호남 지방에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건물로서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하여 지어졌습니다.  성당 정면 중앙에는 높이 솟아 있는 고탑과 좌우 계단탑이 있는데, 고탑 밑에는 종탑이 있고, 종탑 밑에는 장미창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성당을 바치던 아치가 바닥까지 내려오거나 기둥머리까지 내려오는데, 전동성당의 아치는 채광창이 있는 벽에서 멈추고 색깔을 바꾸어 붉은 벽돌로 기둥머리까지 오도록 하여, 전반적인 따뜻함과 포근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내부를 보면, 붉은 벽돌 띠가 제대의 뒷벽을 포함해 모든 곳을 감싸고 있는데, 이 역시 내부 공간 전체에 따뜻함을 주는 동시에 내부의 수직성과 수평성을 균형 있게 잡아주고 있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